칠성급 호텔 사진이 인터넷을 떠돌며 두바이 열풍이 한창일 때가 있었다. 당시 나는 홀로 두바이는 오래 가지 못할 것이라 예견했다. 그리고 얼마 전 두바이 모라토리엄 소식을 들었다. 두바이가 안될 줄 어떻게 알았냐고? 별거 아니다. 순리에 맞지 않아 보였기 때문. 개혁 의지는 높이 산다. 하지만 방법이 별로였다. 사막에 칠성급 호텔을 짓는다는건 너무 인위적이다. (21세기에 갯벌 매워 만든 무개념 도시 송도 또한 이와 같다.) 이 시대는 점점 더 웅장함 보다는 스마트함을 요구한다. 당장 눈에 보이는 거창한 것 보다는 엔트로피를 줄이는 미래 지향적이고 환경 친화적인 기술철학에 투자해야 한다.

난 또한 2015년 이후 한국의 경제는 희망이 없다는 전망을 줄곧 해왔다. 내가 한국 경제를 어둡게 보는 이유는 바로 한국 사회 정의가 무너졌기 때문. 경제 이야기 하다가 뜬금없이 왠 정의냐고? 정의가 없다는 것은 지혜롭지 못하고 또한 멀리 보지 못한다는 뜻이다. 짧은 안목으로 중진국 수준까지는 발전할 수 있다. 하지만 그 이상은 무리. 또한 정의 없는 발전엔 행복도 없다. 정의는 선진국으로 나아가기 위한 저변이고 안목이며 경쟁력이다. 나는 우리 사회엔 그 저변이 없다고 판단했다.

내가 한국 경제를 비관할 당시 삼성이 소니를 이겼다는 낭보가 울려 퍼졌다. 하지만 나는 삼성이 소니를 이겼다기 보다는 반도체와 핸드폰의 제품 수명 주기가 선진국형에서 중진국형으로 넘어왔다는 것으로 봤다. 언제부턴가 고개를 든 샌드위치 위기론에 난 절대 공감하고 있었다. 아니나 다를까 일본은 이미 태양광 발전, 전기자동차 등 첨단 환경 분야에서 훌쩍 앞서가고 있다. 또한 이제 일본은 제품보다 문화를 파는 나라가 되었다. 일본은 고부가가치 선진국 경제 영역으로 나아가고 있다.

확실히 일본은 저력 있는 나라다. 하지만 미국마저 압도하던 90년대 초와 비교하면 일본의 위상은 많이 약해졌다. 지금 우리가 중국에 주목하는 것 이상으로 당시 일본은 세계의 주목을 받았다. 90년대 초반 미국마저 압도하던 일본이 더 이상 뻗어나가지 못하는 원인도 나는 저변에서 본다. 일본의 저변은 물론 우리보다는 탄탄하다. 하지만 오늘 징용 할머니 99엔 지급 사건을 보고 또다시 일본의 한계를 느꼈다. 일본은 세계를 제패하기엔 아직도 너무 옹졸하고 사악하다.

기술 혁신을 주도하며 세계를 호령하던 미국이 서브프라임으로 휘청거린 것 또한 썩은 금융과 정치 권력 때문. 2007년엔 이를 꼬집는 영화 시대정신이 개봉되었다. 앞으로 중국이 세계를 주도할 것이라지만 난 오래 전부터 중국에 대해서 회의적이었다. 중국이야 말로 저변이 가장 취약한 나라이기 때문. 개인 PC를 검열하는 저열함을 벗지 못하는 한 중국이 세계 패권을 쥘 날은 없다고 본다. 세계의 공장과 시장. 그 이상의 역할을 하지는 못할 것이다.


우리 나라는 어찌 보면 두바이보다 더 척박하다. 두바이는 사막이라지만 그래도 기름이라도 콸콸 쏟아지지. 우린 가진건 사람 밖에 없다. 그런데 이명박 정부가 집권 초기에 두바이식 발전을 들먹이길래 좀 한심하게 여겼다. 헌데 혹시나가 역시나였다. 청계천 상인들 피눈물 뽑은 가든파이브 이야기가 들리더니, 이제 환경평가조차 제대로 하지 않은 4대강 사업에 인천공항까지 해외로 들어먹게 생겼다는 황당한 소식이 들려온다. 미디어법 대리투표 합헌 결정 소식을 들은 고3 수험생들은 수능 대리 시험자를 구했다고 한다. 대리시험은 위법이라도 대학 합격은 유효할 것이라며..

또한 이건희 전 삼성 회장 사면이 검토되고 있다. 그 명분은 이건희는 곧 삼성이며, 삼성은 곧 한국 경제라는거다. 중소기업 회장들 사면도 준비하고 있단다. 이들이 감옥에서 나와 다시 경제를 살려야 한다는 국민 여론을 반영하기 위함이란다. 감옥까지 간 사람들이 사회 나와서 도대체 얼마나 도움이 될까? 꼭 그들이어야만 하나? 우리 나라에 그렇게 사람이 없나? 이건희는 곧 삼성, 삼성은 곧 한국 경제라는 공식도 어처구니 없지만 더 안타까운건 국민 여론이 정의보다 경제를 앞세운다는 점이다.

한국 현대사에는 이런 장면들이 많다. 일 할 사람이 없어 친일파를 중용한 이승만. 나라 질서를 바로 잡겠다며 419 정신을 짓밟은 박정희. 김대중 전 대통령은 용서와 화해를 보이겠다며 광주전범 전두환 사면을 건의했다. 한국 현대사에서는 일, 질서, 화해, 경제가 정의보다 우선했다. 그 결과 정의는 무너지고, 국민들의 마음엔 은연중에 무조건 출세만 하면 장땡이라는 생각이 뿌리내렸다. 오직 남 보기 번드르 하면 그만. 게다가 경쟁 위주의 나쁜 교육 까지 이런 국민성 형성에 한 몫 단단히 했다. 한국 사람들은 남의 눈으로 보고 남의 기준으로 생각한다. 남은 있고 나는 없다. 마치 좀비 같다는 생각도 든다.

물론 사람 사는 세상에 밝은 면만 있을 수는 없다. 역사 속에서도 뛰어난 군주는 특히 난세에는 약간의 허물은 덮어주고라도 인재의 능력을 보고 중용했다. 하지만 여기서 중요한 것은 약간의 허물이라는거다. 열에 한 둘이 부족할 때 덮어준다는거다. 하지만 이 나라는 언제부턴가 불의가 주류가 되었다. 그리고 이런 저런 명분을 정의보다 앞세우며 불의를 덮어주었다. 정치 경제 할 것 없이 다들 너무나 치졸하다. 이래서는 안된다! 오래 가지 못한다. 정의가 먼저다. 기본이다. 최우선이다. 정의가 없으면 아무 것도 없다. 근데 언제부턴가 한국 역사에서 정의는 무너졌다. 정의 없는 나라에 과연 미래는 있는가?

언제나 말하지만 한국 사람은 정말 뛰어나고 한국은 정말 사랑스러운 나라인데 한국 사회는 정말 엿같다. 병신이 병신짓 하면 불쌍이라도 한데 똑똑한 놈이 병신짓하니 더 짱난다. 사회와 문화 그리고 지도자의 영향력은 엄청나다 못해 참말로 무시무시하다. 그래서 조직의 쓴맛이라는 말도 있나보다. 개개인이 아무리 뛰어나고 착해도 사회가 더럽고 지도자가 병신같으면 그 사회는 발전할 수 없다. 그래서 내가 보기에 이대로 가다가는 한국의 미래는 어둡기만 하다. 하지만 바꿔 말하면 사회만 바뀌면 잠재력을 마음껏 빛낼 수 있는 나라이기도 하다. 그래서 나는 아직 절망 가운데 한가닥 개혁의 희망을 버리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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